패션지식/패션브랜드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의 '뉴룩(New Look)'

Ellie🌿 2020. 3. 22.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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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크리스찬 디올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브랜드를 소비하면서 어떤 디자이너가 어떤 이념을 가지고 만들었는지 알고 입으면 더 좋은 소비가 될 것 같아요.

현재 명품이라고 불리는 제품들이 사치로서 과시적 명품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디올부터 해서 시대순으로 알고있으면 좋은 디자이너 이야기를 포스팅 해볼게요!

디올하우스도 현재 LVMH그룹 산하에 있습니다.

요즘 이 그룹에 관심이 많아서 따로 LVMH그룹에 대해서도 올려봐야겠어요.

 

 

 

 

 


 

 

 

-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 

 

프랑스의 부유한 브르주아 사업가 집안 출신으로 파리정치대학을 다녔으나 어렸을 적부터 꽃 장식하기를 좋아하고 책에 여성의 하이힐을 신은 다리를 그리는 등 섬세한 성격을 지녔습니다. 집안에서는 정치가로 키우려 했으나 1920년대 예술가의 삶에 빠졌고 풀랑크, 사티, 장 콕토, 크리스티앙 베르나르,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예술가 등과 어울렸다고 합니다.

 

집안의 사업이 망하면서 친구에게 배운 패션드로잉을 팔며 생계를 유지했고, 모자를 만들어 오트꾸뛰르 하우스에 판매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프랑스 디자이너 뤼시앵 를롱에서 디자이너로 일하였죠. 당시 피에르 발망과 함께 일했으며 훗날 그의 오른팔이 되는 마담 레이몽드를 만나게 됩니다.

 

전후에 프랑스의 가장 큰 직물회사인 부사크(Boussac)의 사장인 바르셀 부삭(Marcel Boussac)이 전후 활기를 띠어줄 새로운 스타일의 룩을 만들기를 원해 디올을 자신의 직물회사의 디자이너로 일할 것을 권유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디올은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와 룩을 를 제안하고 부삭이 재정적 지원을 하게 됩니다. 현재의 디올을 만든 초기의 투자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디오르는 꽃의 형태에 매료되어 항상 여성을 꽃처럼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꽃 같은 여성'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하죠.

'코롤라(Corolla)'라는 이름은 꽃의 화관이란 뜻으로 디올의 애프터눈 드레스에 이름붙였으며, 형태 또한 부드럽고 처진 어깨, 좁은 허리, 넓게 퍼지는 화려한 드레스로 꽃을 연상되게 합니다.

 

크리스찬 디올은 디올의 10주년 쇼를 앞두고 심장마비로 1957년 52세의 나이에 사망하게 됩니다. 짧다면 짧은 10년의 시간 동안 오뜨꾸뛰르를 주도했죠. 쇼를 위해 준비하던 스핀들라인(Spindle Line)이 그의 유작이 되죠. 그의 뒤를 이어 21세의 나이로 젊은 디자이너인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이 뒤를 잇게 됩니다.

 

 

 

 

크리스챤 디올(1905~1957)

 

 

 


 

 

 

- 디오르 하우스(The house of Dior)

 

파리 몽테뉴가 30번지에서 1947년 2월 12일 역사적인 첫 패션쇼를 열면서 디올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당시는 파리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물자도 부족하고 분위기도 썰렁해진 상태였습니다.

2차대전 전은 파리의 의상조합의 꾸뛰리에들이 패션을 주도하고 있던 시기였는데요.

전후에 다시 예쁜 옷을 입고 싶던 여성들의 욕구를 미국을 기반으로 하는 기성복들이 주도해가려는 분위기였습니다.

이 찰나에, 디오르의 패션쇼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패션의 중심에 다시 꾸뛰르를 데려다 놓습니다.

 

 

 

 

 


 

 

- 뉴룩(New Look)

 

1947년 2월 12일 이 패션쇼에서 그 유명한 '뉴룩(New Look)'이 공개됐는데요.

뉴룩은 당시 패션쇼에 참석한 미국 하퍼스 바자(Harper's Bazzar)의 카멜 스노우(Carmel Snow) 편집장이 "완전히 새로운 룩!(It’s such a New Look!)"이라고 하여 현재까지 뉴룩이라고 기념비적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뉴룩 앙상블, 잘록한 허리의 '바Bar' 슈트와 풍성하게 퍼지는 풀 스커트.

 

 

뉴룩의 특징은 둥글고 부드럽게 떨어지는 어깨, 잘록한 허리, 다시 허리에서 부터 둥글게 퍼지는 힙이 특징입니다.

저 잘록한 허리의 테일러드 슈트는 '바Bar'슈트라고 불립니다. 또한 풍성한 풀 스커트와 함께 앙상블을 이루고 있죠.

산퉁실크 재킷과 검은색 주름을 잡은 모직 스커트를 결합한 앙상블이며 현재까지도 디올 드레스에서 산퉁실크와 울은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잘록한 허리를 위해서 코르셋이 사용되었고 우아하게 퍼지는 이 스커트를 위해서는 패티코트를 착용해야 했다고 합니다.

디올이 벨 에포크(Belle Epoque)시대의 상류층 옷차림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착용감은 굉장히 편안하고 가벼웠다고 하네요. 이 때문에 샤넬이 1954년 언스트럭쳐드 슈트(Unstructured Suit)로 다시 살롱을 연 것이 디올이 코르셋을 귀환시켰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네요. 어쨌거나 디올과 샤넬은 여성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려는 방식에 있어서 정 반대였던 듯 합니다.

 

 

 

 

 

 


 

 

 

- 시그니처 스타일이 된 뉴룩(New Look)에 대한 여러가지 반응

 

이처럼 디자이너의 작품에는 그 디자이너가 표현하려는 의도가 그대로 담기기 때문에 당시의 디올의 작품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습니다. 디올의 의상은 아직 전후에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원단 소요랑이 엄청난 이 풀스커트만 봐도 굉장히 사치스러워 보였거든요. 물론 가격도 굉장히 비쌌습니다. 또한 디올의 길어진 스커트 길이와 뉴룩의 잘록한 허리와 풍성한 스커트를 위해 사용된 코르셋이나 패티코트 등으로 여성들은 자유를 외치며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금액을 지불할 수 있는 여성들에게는 예전의 호화로운 기분을 느끼게 해주어 그들은 이 룩에 열광했지만요. 전쟁 중 칙칙한 실용적인 의상만을 입다가 디올의 화려한 룩과 고급 직물들을 반긴거죠. 애초에 디올은 모든 여성들을 위해 이 룩을 디자인하지 않았다고 해요. 한 바퀴만 빙 돌아도 엄청나게 퍼질 듯한 화려한 스커트만 봐도 그렇죠. 경제적으로 디올의 옷을 구입할 여력은 없으나 이 스타일을 입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뉴룩 스타일을 만들어 입을 수 있는 패턴이 보그지에 실리기도 하고, 기성복 회사에서 디올 패턴을 구입하여 판매하기도 했다고 해요. 영국의 데레타, 해러즈 백화점 등도 기성복으로 디올의 스타일을 적당한 가격에 판매하는 사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뉴룩 스타일

 

포스팅을 하면서 디올 제품을 볼겸 한국 사이트에 들어갔었는데 한국 디올에서도 공식 홈페이지를 dior.com 통해 패션과 메이크업 제품까지 구입이 가능하네요.

디올 사이트를 들어가서 드레스들을 보니 현재까지 허리를 강조한 부드럽게 떨어지는 우아한 드레스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현재까지 크리스찬디올이 추구했던 뉴룩 스타일의 아이템들이 디올하우스에서 출시되고 있어요.

울, 산퉁실크, 레이스 등 주로 첫 컬렉션 이후의 디올이 사용했던 직물들도 여전히 뉴룩의 느낌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꾸준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출처 : Dior.com

 

물론 이외에도 1949년부터 기성복 라인인 프레타포르테(Prêt-À-Porter)를 런칭하면서 현재까지 꾸뛰르 라인과 레디-투-웨어(reay-to-wear)로 두 종류의 컬렉션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프랑스 꾸뛰르를 화려하게 부활시킨 디올이지만 기성복 런칭 후 기성복 라인에서 더 큰 매출을 발생시키죠.

다음에는 꾸뛰르 이후 디올이 전개한 사업들과 현재까지 디올의 주요 시그니처 룩, 발전 과정에 대해서도 담아보겠습니다.

 

 

 

여기까지 디올의 배경과 디올의 상징적인 배경인 뉴룩 위주로 간략히 설명해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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